양천구청

양천구 개청과
목동아파트 개발

양천구는 1988년 목동아파트 개발에 따른

목동의 인구 변화로 강서구에서

강서구와 양천구로 나뉘게 되었다.

당시, 기존 강서구 760,262명의 인구 중

절반 이상인 391,759명

양천구 소속으로 편입되었다.

처음 양천구청의 청사는

컨테이너 박스로 임시청사를 두어 개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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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분구에 따른 업무처리 지침
1988년 분구 관련 구별 행정여건 파악
1988년 분구에 따른 관련계획 및 지침시달
1988년 분구 관련 관계관회의 개최
1988년 분구에 따른 신설구 개청계획
1988년 분구에 따른 개청준비 추진계획
1988년 신설구 개청 관련 문제점 및 대책
1988년 분구에 따른 소요예산 요구자료 제출
1988년 양천구 개청준비 소요예산

(양천구청, 양천구보건소)

1988년 신설구 개청에 따른 예산배정 요구
1988년 양천구청 임시청사 건립에 따른 협의(1)
1988년 양천구청 임시청사 건립에 따른 협의(2)
1988년 신설구청사 확보지침
1988년 신설구청 주요 행정장비 확보지침
1988년 양천구청사 확보계획
1988년 신설구청사 확보계획(중랑,노원,양천,서초,송파)
1988년 구청 청사부지 추가확보 검토지시
1988년 구청 신청사부지 추가확보 조치통보
1988년 신설구청 임시청사 위치통보
1988년 신설구 전화번호 통보

임시청사에서 4년을 보내고, 1991년 양천구의회가 개원한 다음 해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 연면적 3,411.58평에 이르는 양천구 신청사가 준공되었다.

준공 당시의 양천구 신청사는 체력단련장, 전산교육장 등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는 최신식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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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신설구청사 건립 계획시달
1989년 양천구청 청사부지 획지계획보고
1990년 신축청사 기본설계안 확정

이와 같이 양천구가 개청을 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80년대 최초의 공영개발 ‘목동 신시가지 개발 사업’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목동아파트 일대는 대부분 작은 마을 단위의 농경지로 이루어졌다.

주택도 단층 한옥으로, 주변에 많은 공터가 있는 모습과 신정동 일대에 철거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서울시는 주택부족과 부동산 투기 과열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이 대두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1981년 6월 서울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 도시구조의 다핵화를 골자로 한 ‘2000년대 서울시 도시기본계획 마스터플랜’을 발표하였다.

또한 1983년 4월 주택물량의 대량 공급과 투기 열기 진정을 위해 목동 신시가지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목동 개발을 추진하였다. 서울의 낙후지역이었던 목동에 대규모 개발계획이 잇따르자 전국민의 관심이 쏟아졌다.

목동 개발은 자족적인 ‘도시 안의 신도시’를 목표로 하였다.

다양한 위계를 지닌 상업 업무 시설을 중심지구로 넓게 할애하여 서울 서부지역의 중심을 이루게 하고 이곳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인근 신주거단지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구상되었다.

서울에서 채택한 기본계획은 남북으로 완만하게 S자로 구부러진 구조였다. 목동중심축의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설계되었다.

목동지구 북단에는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여, 목동지구 내의 모든 가구에 지역 난방을 공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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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서울목동지구 택지개발 계획승인
1983년 목동지구 신시가지개발 기본설계(안)

현상공모 당선작발표

목동신시가지 개발 기본계획 확정(시장방침도면)
목동지구개발사업 계획 지도
1984년 서울목동지구택지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
1984년 목동개발지구내 중심축가로확정(중심축블럭확정)
1984년 목동지구 도시설계(안) 보고
1985년 목동 기존 주택지정비 계획
1984년 강서구 도시 기본계획 책자
목동지구 도시설계 종합계획도
목동지구 도시설계 중심지구 기능 배분도
목동지구 도시설계 중심축 교통 체계도
목동지구신시가지 중심지구도시설계개요
중심지구 기능 배분도 팸플릿

목동 개발계획으로 지어진 목동아파트는 1984년부터 1차 분양을 시작으로 1987년 아파트를 준공하였으나 3차 분양까지 미분양의 저조한 성적을 보여 여러 대책이 강구되었다.

철거 대상 가옥주에게 시영아파트 입주권과 약간의 이주보상금만이 지급되었을 뿐 세입자에 대한 철거 대책은 없는 상황으로 철거민의 빈번한 집단 시위를 미분양 원인 중 하나로 분석하였다. 이에 실질적인 보상과 입주권 제시 등을 통해 철거민들과의 마찰을 해결하였다.

수요자들의 기피 요인이 됐던 학군 문제도 명문학교인 진명여자고등학교와 양정중 · 고등학교목동으로 이전하면서 미분양의 문제가 나아지고 목동이 교육의 중심지로 발판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목동아파트는 1988년 10월 392개의 동 26,627세대가 입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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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신시가지 건설
목동지구아파트 건설공사 준공사진
1986년 목동아파트 미분양 사유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1공구 입주 안내문
1986년 입주증 및 입주통지서
입주자 생활안내

목동지구개발사업소에서는 주요 목동지구 도시계획 중 하나인 녹지체계구상의 일환으로 목동 신시가지 중심공원 조성계획을 제안하였다.

미국과 일본 등 외국 사례를 참고하였고, 공지배분 및 동선 계획 등 구체적인 공원조성 계획을 세웠다.

양천구 목동아파트가 풍부한 녹지와 공원들로 인해 쾌적한 주거 공간이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30년 전 미리 계획하고 조성한 산물이 아닐까 싶다.

목동아파트는 대한민국의 대표 아파트 단지이자 양천구의 자부심, 서울의 교육과 서부지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으며, 현재 새로운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