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구청

양천구는 1988년 목동아파트 개발에 따른

목동의 인구 변화로 강서구에서

강서구와 양천구로 나뉘게 되었다.

당시, 기존 강서구 760,262명의 인구 중

절반 이상인 391,759명

양천구 소속으로 편입되었다.

처음 양천구청의 청사는

컨테이너 박스로 임시청사를 두어 개청하였다.

  • 임시청사 개청현판식

  • 임시청사 개청 테이프 컷팅식

  • 임시청사 전경

  • 임시청사

  • 임시청사 민원실

  • 임시청사 민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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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천구청 임시청사 개청사진

임시청사에서 4년을 보내고, 1991년 양천구의회가 개원한 다음 해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 연면적 3,411.58평에 이르는 양천구 신청사가 준공되었다.

준공 당시의 양천구 신청사는 체력단련장, 전산교육장 등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는 최신식 건물이었다.

  • 양천구 신축청사 기공식

  • 양천구 신축청사 기공식 첫삽

  • 양천구 신축청사 기공식 케이크 커팅식

  • 양천구 신축청사 조감도

  • 양천구 신축청사 준공식

  • 양천구 신축청사 현판식

  • 양천구 신축청사 현판식

  • 양천구 신축청사 테이프커팅식

  • 양천구 신축청사 준공기념 단체사진

  • 양천구 신축청사 준공식 방명록

  • 양천구 신축청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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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천구청 신축청사
    개청사진

이와 같이 양천구가 개청을 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80년대 최초의 공영개발 ‘목동 신시가지 개발 사업’이 있었다.

1980년대 당시 목동아파트 일대는 대부분 작은 마을 단위의 농경지로 이루어졌다.

주택도 단층 한옥으로, 주변에 많은 공터가 있는 모습과 신정동 일대에 철거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목동 개발 전 농경지 모습

  • 목동 개발 전 주택의 모습

  • 목동 개발 전 신정교 주변 철거촌

  • 목동 개발에 쓰일 공사자재가 쌓여있는 모습

  • 목동 개발을 위한 기존 주택지 철거_1

  • 목동 개발을 위한 기존 주택지 철거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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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동 신시가지 개발 사업'
    이전의 목동

1980년대 서울시는 주택부족과 부동산 투기 과열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이 대두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1981년 6월 서울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 도시구조의 다핵화를 골자로 한

‘2000년대 서울시 도시기본계획 마스터플랜’을 발표하였다.

또한 1983년 4월 주택물량의 대량 공급과 투기 열기 진정을 위해

목동 신시가지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목동 개발을 추진하였다.

서울의 낙후지역이었던 목동에 대규모 개발계획이 잇따르자 전국민의 관심이 쏟아졌다.

목동 개발은 자족적인 ‘도시 안의 신도시’를 목표로 하였다.

다양한 위계를 지닌 상업 업무 시설을 중심지구로 넓게 할애하여

서울 서부지역의 중심을 이루게 하고

이곳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인근 신주거단지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구상되었다.

서울에서 채택한 기본계획은 남북으로 완만하게 S자로 구부러진 구조였다.

목동중심축의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설계되었다.

목동지구 북단에는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여,

목동지구 내의 모든 가구에 지역 난방을 공급하였다

목동 개발계획으로 지어진 목동아파트는

1984년부터 1차 분양을 시작으로

1987년 아파트를 준공하였으나

3차 분양까지 미분양의 저조한 성적을 보여

여러 대책이 강구되었다.

철거 대상 가옥주에게 시영아파트 입주권과

약간의 이주보상금만이 지급되었을 뿐

세입자에 대한 철거 대책은 없는 상황으로

철거민의 빈번한 집단 시위를 미분양 원인 중 하나로 분석하였다.

이에 실질적인 보상과 입주권 제시 등을 통해

철거민들과의 마찰을 해결하였다.

목동 아파트 준공

수요자들의 기피 요인이 됐던 학군 문제도

명문학교인 진명여자고등학교와 양정중 · 고등학교

목동으로 이전하면서

미분양의 문제가 나아지고

목동이 교육의 중심지로 발판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목동아파트는

1988년 10월 392개의 동 26,627세대가 입주하였다.

사진 더 보기 | 목동 개발 과정

  • 목동 아파트 7공구 711동 1층 바닥 공사

  • 목동 아파트 15공구 건설현장

  • 목동 아파트 건설현장 전경

  • 철거민 시위 모습

  • 목동야구장 건설

  • 안양천 부근 교각 공사

  • 신도림고가차도 공사

  • 목동 아파트 1단지 준공 후 전경

  • 목동 아파트 2단지 준공 후 전경

  • 목동 아파트 준공 후 전경

  • 도림천고가도로 준공 후 전경

  • 목동종합운동장 준공 후 전경

보도자료 더 보기 | 목동 개발 과정

  • 1983년 4월 12일자 조선일보 스크랩

  • 1983년 4월 12일, 13일자 만평 스크랩
    (조선일보, 한국경제신문, 중앙일보, 매일경제신문)

  • 1983년 4월 15일자 조선일보 스크랩

  • 1983년 4월 16일 경향신문 스크랩

  • 1983년 4월 17일자 서울신문 스크랩

  • 1983년 5월 13일자 경향신문 스크랩

  • 1983년 5월 30일자 중앙일보 스크랩

  • 1986년 6월 17일자 경향신문 스크랩

  • 1986년 7월 17일, 22일, 23일자 스크랩(한국일보, 매일경제신문, 조선일보)

  • 1986년 10월 7일, 14일자 스크랩(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신문)

  • 1987년 1월 9일, 12일자 스크랩(매일경제신문, 동아일보)

  • 1987년 4월 3일, 24일, 25일자 스크랩
    (경향신문, 매일경제신문, 한국일보, 조선일보)

  • 1987년 6월 4일, 5일자 스크랩(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 1987년 7월 9일자 한국경제신문 스크랩

  • 1987년 9월 2일, 4일자 매일경제신문, 중앙일보 스크랩

  • 1987년 9월 9일, 10일자 스크랩
    (중앙일보, 조선일보, 매일경제신문)

목동지구개발사업소에서는 주요 목동지구 도시계획 중 하나인 녹지체계구상의 일환으로

운동, 휴게, 놀이, 축제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주제 공원 조성을 위하여

목동 신시가지 중심공원 조성계획을 제안하였다.

미국과 일본 등 외국 사례를 참고하였고,

공지배분 및 동선 계획 등 구체적인 공원조성 계획을 세웠다.

관련기록물 더 보기

번호 기록물 제목 보기
1 목동 신시가지 중심공원 조성계획
2 주제공원의 계획개념과 자료
3 공원녹지계획 팸플릿
4 1987년 파리공원조성공사
5 1987년 파리공원개원

양천구 목동아파트가 풍부한 녹지와 공원들로 인해

쾌적한 주거 공간이 조성될 수 있었던 것은

30년 전 미리 계획하고 조성한 산물이 아닐까 싶다.

목동아파트는 대한민국의 대표 아파트 단지이자

양천구의 자부심, 서울의 교육과

서부지역의 중심지로 자리잡았으며,

현재 새로운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 목동아파트 전경(1)

  • 목동아파트 전경(2)

  • 목동아파트 전경(3)

  • 목동아파트 전경(4)

  • 목동아파트 전경(5)

  • 목동아파트 전경(6)

    사진 더 보기

    양천구의 자부심
    새로운 변화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