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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서울시는 주택부족과 부동산 투기 과열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이 대두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는
1981년 6월 서울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 도시구조의 다핵화를 골자로 한
‘2000년대 서울시 도시기본계획 마스터플랜’을 발표하였다.
또한 1983년 4월 주택물량의 대량 공급과 투기 열기 진정을 위해
목동 신시가지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목동 개발을 추진하였다.
서울의 낙후지역이었던 목동에 대규모 개발계획이 잇따르자 전국민의 관심이 쏟아졌다.
목동 개발은 자족적인 ‘도시 안의 신도시’를 목표로 하였다.
다양한 위계를 지닌 상업 업무 시설을 중심지구로 넓게 할애하여
서울 서부지역의 중심을 이루게 하고
이곳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인근 신주거단지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구상되었다.
서울에서 채택한 기본계획은 남북으로 완만하게 S자로 구부러진 구조였다.
목동중심축의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설계되었다.
목동지구 북단에는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하여,
목동지구 내의 모든 가구에 지역 난방을 공급하였다
목동 개발계획으로 지어진 목동아파트는
1984년부터 1차 분양을 시작으로
1987년 아파트를 준공하였으나
3차 분양까지 미분양의 저조한 성적을 보여
여러 대책이 강구되었다.
철거 대상 가옥주에게 시영아파트 입주권과
약간의 이주보상금만이 지급되었을 뿐
세입자에 대한 철거 대책은 없는 상황으로
철거민의 빈번한 집단 시위를 미분양 원인 중 하나로 분석하였다.
이에 실질적인 보상과 입주권 제시 등을 통해
철거민들과의 마찰을 해결하였다.
수요자들의 기피 요인이 됐던 학군 문제도
명문학교인 진명여자고등학교와 양정중 · 고등학교를
목동으로 이전하면서
미분양의 문제가 나아지고
목동이 교육의 중심지로 발판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목동아파트는
1988년 10월 392개의 동 26,627세대가 입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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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지구개발사업소에서는 주요 목동지구 도시계획 중 하나인 녹지체계구상의 일환으로
운동, 휴게, 놀이, 축제 등을 할 수 있는 다목적 주제 공원 조성을 위하여
목동 신시가지 중심공원 조성계획을 제안하였다.
미국과 일본 등 외국 사례를 참고하였고,
공지배분 및 동선 계획 등 구체적인 공원조성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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